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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from Eng text, Jun 2025
시청각적으로 작곡하기 – 오디오비주얼 작업 실천과 관계들에 대한 관점
(Composing Audiovisually – Perspectives on audiovisual practices and relationships)
서문 – 루이스 해리스(Intro by Louise Harris).
먼저,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소리와 이미지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그리고 인간인 우리가 그 상호 작용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 관심있다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의 관심사는 지각적, 철학적, 현상학적, 감정적, 신체적, 학문적, 영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사는 시각 음악(visual music), 내러티브 영화, 뮤직비디오, 비디오 게임, 설치미술, 확장된 영화(expanded cinema), 혼합 미디어 퍼포먼스 또는 이 전부(또는 이 중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몰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다양한 형식의 시청각적(audiovisual) 경험과 마주쳤을 때 그 경험에 대해 구성, 사고, 교육, 분석 또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탐구하면서 다소 분산된 형국으로나마 학습 공동체이자 실천 공동체로서 우리가 서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Lave and Wenger, 1991).
이 서론을 쓰는 지금, ‘분산된’ 실천 공동체라는 아이디어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보다도 훨씬 공명할 것입니다. 오늘은 2020년 3월 17일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 대면 수업이 취소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며,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영국 전역이 전면 봉쇄될 가능성이 높은 초기 단계입니다. 현재 대규모 인원의 모임은 권장되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이동은 금지되었으며 70세 이상이거나 기저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권고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매우 이상한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대비하지도 못했던 시기이며, 시청각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는지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다소 불필요하고 경솔하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공유된 지식과 이해를 개발하는 것이며, 저는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도 유익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나아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도 예술을 창작하고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내용은 이런 관점에서 – 궁극적으로 이것이 유용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 접근되었습니다.
이 책의 근간은 제가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음악 분야를 전공한 학자로서 제 자신의 창작 실천을 맥락화하고 이해하려는 초기 시도에서 뻗어나온 것입니다. 셰필드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시청각 작곡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갈 적에, 제가 속하려고 했던 시청각 작곡 분야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어떤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 분야의 획기적인 연구서인 미셸 시옹(Michel Chion)의 《오디오비전:소리와 화면(Audio-Vision: Sound on Screen)》(1994)은 출간된 지 이미 15년이나 지났고, 여전히 내러티브 영화에서의 사운드 역할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나 카르발류(Ana Carvalho)와 코넬리아 룬드(Cornelia Lund)의 주요 저서인 《시청각 혁신(The Audiovisual Breakthrough)》(2015)과 같은 연구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매우 통찰력 있지만 본문의 주된 목적이 시청각적 경험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탐구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라이브 시청각 작업 실천을 정의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뮤직비디오에 대한 제 자신의 반응을, 예를들면 내러티브 영화에서의 사운드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에 대한 반응이나 상호활동적 시청각 설치작업을 경험할 때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찾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찾을 수 없었고, 제 자신의 시청각 작곡 실천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러한 연구서를 소원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입니다.
이 책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만큼, 무엇이 아닌지 또한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할텐데, 일단 저는 이 책에서 제시하고 옹호하는 접근 방식과 잠재적으로 관련이 있는 모든 내용을 읽거나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고, 이 책과 관련된 설문 사항들에서 나온 읽을거리 제안 수는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그리고 덧붙이자면, 아주 대단합니다!). 저는 제 경력 전반에 걸쳐, 그리고 이 책을 준비하면서 폭넓은 독서를 해왔습니다. 또한 시청각 작품과 시각과 청각 각각의 형식에 대한 서양의 정전 텍스트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 외의 것까지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보편적인 지식이나 보편적인 진실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이 책은 시청각 작품을 접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이해하고 위치시키려는 교차적이고 학제적 접근 방식, 즉 가능성과 제안을 제시합니다. 이 글은 제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이 시청각적 작곡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한 저의 생각과 작업에 대해 질문하고, 그 경험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적용하고, 시청각적 경험에 대한 개인 및 집단적 반응을 어떻게 탐구하고 위치시킬 수 있는지 조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려하는 것 또한 중요할텐데, 이는 이후 섹션에서 논의의 형태를 알리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이 책은 시청각 작업에 참여하는 광범위한 실무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반드시 특정한 형식이나 매체에 속하지 않거나, 특정한 관점이나 분야에 속하지 않고, 소리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가 모두 포함된 작품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개인적으로나 협업적으로 시청각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시청각적 경험에 대해 이미 글을 쓰고 있거나 그렇게 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할 것입니다. 이 포괄적 독자층이 가진 난점은 이 공동체 각 구성원이 자기 자신들의 학문적, 미적, 개념적, 철학적, 그리고 역시나 개인적 경험의 관점과 몰두에서 텍스트에 접근할 것이라는 것, 결과적으로 여기에서 논의에 접근하는 방식이란게 모든 독자층에게 전적으로 공감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가피한 일이며, 어느 정도는 다음 사실을 짚어줌으로써 설명해둘 수 있습니다.:
A: 이 책의 초점이 보다 특정적이라는 점은 특정한 사항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차적이고 학제간적인 논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 책의 분량이 수반할 간결성과 저자의 관심사 및 맥락에 따라 필연적으로 제한적일 것입니다.
B: 이 책은 광범위한 학문적, 미적, 개념적, 철학적, 현상학적 관점 등을 다루려고 시도하지만, 언급된 각 논문과 저서에 대해 한 권의 책을 쓴다 해도 우리의 탐구를 둘러싼 더 넓은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활용된 관점과 인용된 아이디어는 필연적으로 선택적이며, 많은 경우 당면한 논의에 공명하는 근본적인 측면으로 축약됩니다. 이 책은 시청각적 경험을 둘러싼 학제간 대화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것이지, 확실한 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은 특히 고등 교육 환경에서 시청각 실천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으며(그러나 제시된 내용의 대부분은 중등 학교 수준에도 적용할 수 있음),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방법과 시청각 작업에 대한 심층적이고 철저한 참여와 발전을 장려하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제시된 교육학적 아이디어는 주로 실습에 기반한(그리고 이상적으로는 연구 중심의) 교육을 의미하지만, 제안된 연습 중 다수는 순전히 이론적인 과정에도 적합합니다.
여기서 제시된 담론의 잠재적 단점을 인식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즉, 중산층 출신의 건강하고 특권을 누리는 유럽 백인 여성으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외에도 사회적, 사회관계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교육적 이점을 누렸습니다(실제로 이 책에는 이러한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영향을 받은 측면이 많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이후 맥락에 따라 논의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중심 관점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런 기본적인 특성으로 형상되고 형성되었습니다. 이 점을 짚고 넘어감으로써 저는 어느 정도 그러한 특징들을 설명하고 또 그것이 이 책이 포함할 선입견과 성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연구는 특정한 학문적 배경에서 출발했으며, 그 배경에만 뿌리를 두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노력했으나, 이 분야에서의 30년에 가까운 개인적 연구의 무게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건강한 사람의 관점이므로, 세상과 감각적으로 만나는 특권적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시청각적 경험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는 백인 유럽인의 관점이므로 해당 유산 밖의 개인적 시청각적 경험을 설명할 수 없으며 설명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의도적으로 특정 정치적 관점에서 논의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그것은 다른 권에서 다룰 것입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여성주의적인 접근을 한 것도 아닙니다(저자 자신은 페미니스트이지만 페미니즘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것은 이 책에 담긴 아이디어와 작품을 접할 때 자기자신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시청각 작품에 대한 반응을 탐구함에 있어 개인적 경험, 맥락, 선입견을 질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특정한 개인적 관점에서 쓰여졌으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의 역할과 개인적 맥락 및 경험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부각하는 관여의 틀과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이 책은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장 – 시청각적으로 사고하기 – 이 작업과 관련된 맥락적 배경을 다룹니다. 시청각 작품과의 만남이 어떻게 이론화되는지 고찰하고, 관련 텍스트를 소개하고 분석하며, 시청각 작품에 대한 현재의 사고방식과 접근 방식에 대한 간략한 개요를 제시합니다. 이 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개발된 개방형 설문지에 대한 응답을 제시하고 분석하며, 현대 미술가, 사운드 디자이너, 감독 및 협력자들과의 일련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시청각 작품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합니다. 또한 시청각적 작업을 창작하고 경험하는 두 가지 모두의 맥락에서 ‘시청각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제2장 – 시청각적 작곡 – 제 자신의 시청각적 작곡 과정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보여주고, 지난 10년 동안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봅니다. 제 자신의 작업과, 보다 넓은 의미의 시청각 작업 교육학과 명확히 연결되어 있는 사운드와 시각 형태론, 관계들과 전문용어들에 관한 기초 구성 요소들을 제시하며 시청각적 작곡의 기본 요소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살펴봅니다.
제3장 – 시청각적 분석 – 앞의 두 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을 가로지르는 시청각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가능한 생각의 틀을 제시합니다. 이 연구는 제안된 분석적 생각틀을 내러티브 영화, 시각음악, 아티스트 필름, 시청각 설치작업 및 뮤직비디오들의 예시에 적용하며 다양한 시청각적 산물들을 면밀히 읽음으로서 이를 수행합니다. 저는 그러나 책의 제목 자체를 고려하는 것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책 전체의 틀을 잡는데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책은 여기에 제시된 생각의 틀을 잡는데 있어 언어가 중요하다는 이해에 기반해 접근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론 말과 문장 그리고 용어들이 특정한 것들을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유용되는 것이, 그것들 자체와 그 성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뒀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은 ‘작곡’과 ‘시청각’이라는 용어를 각각 따로 논의, 정의, 해명한 다음, ‘시청각적 작곡’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책의 이후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첫째로, ‘작곡(composition)’. 이 책의 맥락에서 이 용어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composition’이라는 단어의 어원부터 살펴보면, 라틴어 ‘componere'(‘조립하다’)에서 시작하여 14세기 고대 프랑스어 ‘composicion'(결합하는 행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러셀 그룹 고등교육기관(Russell Group HEI)에서 음악 과목 아래 일하며, 플루트 연주자로서 고전적인 훈련을 받아왔고, 학업 경력 동안 다른 러셀 그룹 고등교육기관 세 곳에서 수학한 학자로서, ‘작곡’이라는 용어는 저 개인의 역사상 매우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를 참고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옵니다. ‘음악을 창작하는 활동이나 과정, 그리고 그러한 활동의 결과물.’ 이 용어는 라틴어 동사의 분사 어간에서 파생한 영어 명사의 큰 범주에 속합니다(여기서는 composit-, compo-nere에서 유래: ‘조립하다’라는 뜻). 뒤에 접미사 -io/-ionem이 붙습니다. 어원적으로 ‘작곡’의 주요 의미는 ‘작곡되는 상태’와 ‘작곡하는 행위’입니다. 16세기 이래로 영어 단어와 다른 언어의 동족어는 다양한 연주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음악 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행위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제한적 의미에서의 작곡의 창작과 해석은 일반적으로 즉흥 연주와 구별되는데, 즉흥 연주의 경우 작곡의 결정적인 측면이 연주 중에 발생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공연자가 다양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Blum, 2012, para.1, 강조구는 원저가 아닌 이 책의 저자가 표시한 것)
**역자주:뉴 그로브 음악 및 음악가 사전(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은 1800년대 말 런던에서 처음 발간된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독일어판 『음악사 및 음악가 사전(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과 더불어 음악사 및 음악 이론에 관한 방대한 참고 서적 중 하나로 여겨진다. 참고:위키피디아 관련페이지(2025년 6월 접속).
하지만 이 책은 음악과 소리로 작곡하는 행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분야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Grove Art**는 시각 예술에 적용되는 작곡에 대해 비슷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지만 Tate 온라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음악이나 글, 그림이나 조각 등 모든 작품을 ‘콤포지션’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예술 작품 내의 요소들의 배열을 의미함.’ 예술가는 예술 작품의 다양한 요소들을 배열하여 그 요소들이 예술가 자신(과 관람객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관계를 이루도록 함. (Tate Online, 2020, para.3) 우리는 춤에서도 또한 이 용어가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통 안무의 기본 요소로 사용되며, 어떤 경우에는 안무라는 용어 자체와 혼용되어 사용됩니다(Smith-Autard, 2000, 강조구는 출처가 아닌 이 책의 저자가 표시한 것).
**역자주: Grove Art Online은 Grove Dictionary of Art라고도 불리는 The Dictionary of Art의 온라인 버전이며 Oxford University Press의 온라인 미술 참고 출판물에 대한 인터넷 게이트웨이인 Oxford Art Online의 일부다. 이것은 대규모 미술 백과사전으로, 이전에는 Grove에서 1996년에 처음 출판한 34권의 인쇄 백과사전이었고 2003년에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신판이 출판됨.참고:위키피디아 관련페이지(2025년 6월 접속).
만약 탐색 범위를 더 넓혀서 학문적 맥락에서 ‘콤포지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있는 다른 분야를 통합한다면, 수학, 화학, 컴퓨터 과학과 같은 분야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이 용어는 (다른 곳들 중에서도) 합성 관계(composition relation)의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합성 관계의 맥락에서 두 개의 주어진 관계로부터 새로운 관계가 발생하고, 함수 합성의 맥락에서 두 개의 함수를 사용하여 추가적인 합성 함수를 생성하는 연산에서 등장합니다. 화학에서는 혼합물과 물질, 특히 원소나 성분이 결합되어 최종 생성물을 구성하는 방식과 관련된 화학적 조성(chemical composition)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과학에서 함수 합성(function composition)은 간단한 함수를 조합하여 더 복잡한 함수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줍니다.
근본적으로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와 학문을 통틀어 구성 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 배열, 조립 및 생성하는 것과 연관됩니다. 각 경우의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처리과정에 있어서의 특질과 관련된 궁극적 목표에는 널리 일관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의 ‘작곡’이라는 용어는 결합 또는 조립을 의미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작곡’은 ‘요소를 만들고, 배열하고, 결합하는 과정, 즉 사물을 조립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음악 분야 안팎에서 ‘작곡’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작곡 과정과 작곡 행위의 결과물을 모두 지칭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정의는 ‘요소를 창조하고, 배열하고, 결합하는 행위, 즉 사물을 하나로 모으는 행위’와 이 행위에서 비롯되는 작업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특히 과학 분야에서 ‘콤포지션’은 종종 기존의 것들을 결합하여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광범위하게 다시 살펴볼 아이디어이며, 단일 예술 형태에 적용할 때보다 학제간 작곡의 맥락에 훨씬 잘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제목에 대해 계속 파헤치며 ‘시청각’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다보면 보다 까다롭고 더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여러 분야와 맥락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정의가 없고, 실상 단어의 형식에 대한 뾰족한 합의도 없습니다. 출처에 따라 하이픈으로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으며, 시청각적 경험을 매개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나 장비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 그 자체에는 그다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에 이어지는 당연한 흐름으로서, 이 책의 이후 장의 기초가 되는 시청각적 실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그 용어를 사용하는지 여부와, 사용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받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용어가 ‘오래되었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응답했고, 특정 언어(적어도 두 번 이상 프랑스어가 언급됨)에서는 이 용어가 예술 실천보다는 기술 부서를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고 답했습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OED)에서는 현재 하이픈을 사용한 형태의 이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시각과 청각 둘 다에 관련되거나 이 둘 모두를 포함하는; 특히 (교육 장비나 자료에 대해) 시각적 이미지와 소리를 모두 사용하여 이해를 돕는 것”(OED 온라인, 2020, 강조구는 출처가 아닌 이 책의 저자가 표시한 것).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서(OED에서는 이 용어가 20세기 초반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설명) 이 용어가 가진 잠재적 문제는 적용과 형식이 모호하다는 점과 함께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신중하게 살펴본다면 이는 아마도 기회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용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이 목적과 맥락에 맞게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저 자신을 ‘시청각’ 작곡가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 소리 및 시각 예술가나 혼합 미디어/멀티미디어/하이브리드 미디어/인터미디어 예술가가 아니라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제가 제 자신의 작업이 단일 작품(다양하게 표현되긴 하지만)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를 구성(composition)하고 결합(combination)하는 것이라고 믿고, 작품 내의 소리와 이미지가 모두 작품의 개념과 인식 또는 수용에 필수적이고 통합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인식적 구성요소가 공존하는 방식에 있어서 미디어적 계층이 있어서는 안됐습니다. 저는 ‘시청각’이라는 용어가 이러한 응집력과 통일성이라는 감각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를 먼저 언급하는 이 단어의 필연적인 선형적 구문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단어 자체가 소리와 이미지를 동등한 조건에서 다루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맥락에서 ‘시청각’이라는 용어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특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 전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제를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청각적으로 작곡하기: 음향적이고 시각적인 소재를 창작하고, 배열하고, 결합하는 과정과 결과물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탐구.
다음 섹션인 ‘시각적 사고’에서는 이 책의 정신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관련된 이론적, 개념적 맥락에서 가지는 위치를 제시함으로써 이 탐구의 여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translated from Eng text, May 2025
‘얽힌 뇌 (The entangled brain)’
– 뇌는 기계보다는 찌르레기들의 군집비행이나 오케스트라 교향곡과 비슷하다.
루이스 페소아(Luiz Pessoa)는 메릴랜드 신경영상 센터 소장이자, 인지 및 감정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며, 메릴랜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이다. 그는 The Cognitive-Emotional Brain(2013)과 The Entangled Brain(2022)의 저자이기도 하다. 편집인: 샘 드레서(Sam Dresser).
수천 마리의 찌르레기가 저녁 하늘에서 급강하하거나 소용돌이치며 ‘군집비행’이라 불리는 패턴을 만드는 것은 어느 한 새가 공중 발레를 안무했기 때문이 아니다. 각각의 새는 가장 가까운 이웃 새와 하는 상호 작용의 간단한 규칙을 따를 뿐이다. 이런 부분적 상호 작용들에서 포식자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복잡하고 조화로운 단체적 움직임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출현의 원리, 즉 중앙 통제가 아닌 상호작용 자체에서 정교한 행동이 발생한다는 원리는 자연과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수많은 개별 거래 결정에서 나오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딱 맞는’ 가격을 포함하지 않는 시장가격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각 거래자는 부분적인 정보와 개인적 전략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들 개개의 상호작용의 집합은 전 세계의 정보를 통합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언어 또한 비슷한 출현 과정을 거쳐 진화한다. 어떤 개인이나 위원회도 ‘LOL’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거나 ‘cool’의 의미가 온도의 의미 이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적 없다(프랑스어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변화들은 매일 일어나는 수백만 건의 언어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언어사용자들의 집단적 행동에서 새로운 언어 패턴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예시들은 상호 연결성이 높은 시스템의 주요 특징을 강조해 보여주는데, 구성 요소들 간의 풍부한 상호 협응은 환원적 분석에 저항하는 속성을 생성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출현의 원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이해하기 힘든 미스터리 중 하나인 뇌의 작동 방식을 조사하는 데 있어 유용한 렌즈를 제공한다.
출현이라는 핵심 아이디어는 내가 ‘얽힌 뇌(entangled brain)’라는 개념을 발달시키는 데 영감이 됐다. 즉, 뇌를 특정 영역별로 국한해서 이해하기 보다는 분산되거나 겹쳐지는 영역들 간의 네트워크에서 기능이 출현하는, 상호 작용적으로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해해야할 필요성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 생각틀은 아직 신경과학 분야에서 소수 의견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연구자들이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패러다임이 (혁명적이라기 보다는)점진적으로 전환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복잡성 과학(Complexity Science)이란, 집단적(collective) 행동으로 집단적 속성이 발생하는 것처럼 개별 부분을 고립시켜 분석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많은 상호작용 요소들로 구성된 시스템들을 연구하는 학제간 분야이다. 생태계, 경제 또는 (앞으로 살펴볼) 뇌와 같은 이러한 시스템은 비선형적 역학, 적응성, 자기 조직화 및 여러개의 공간과 시간의 규모에 걸쳐진 네트워크 상호 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얽힌 뇌’라는 생각틀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탐구하기에 앞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신경과학 분야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1899년, 각각 24세와 29세였던 세실 포크트와 오스카 포크트(Cécile and Oskar Vogt)는 베를린에 도착하여 신경학센터를 설립했다. 신경학센터는 본래 인간 뇌의 해부학적 연구를 담당하는 사립기관이었으나, 1902년에 ‘신경생물학 연구소’로, 1914년에는 ‘카이저 빌헬름 뇌 연구소’로 확장되었다. 당시 세실 포크트는 연구소 전체에서 단 두 명 뿐인 여성 중 한 명이었다. (1908년까지 프로이센에서는 여성은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과학자로 활동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그녀는 1900년에 파리(Bicêtre Hospital)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남편 오스카는 1894년에 예나 대학교(University of Jena, a.k.a Friedrich Schiller University Jena)에서 뇌들보(또는 뇌량(腦梁), corpus callosum)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98년 라이프치히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코르비니안 브로드만(Korbinian Brodmann)은 1901년 포크트 부부가 이끄는 연구에 합류하여 새로운 세포 표시법으로 염색한 조직 절편을 사용한 대뇌 피질(the cerebral cortex) 세포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피질(cortex)은 홈과 돌출부가 있는 바깥쪽 뇌 표면이고, 피질하부(subcortex)는 그 아래에 있는 다른 세포 덩어리로 구성된다.) 포크트 부부와 브로드만 각자의 연구는 대뇌 피질의 완전한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해부학자들의 첫 번째 물결에 속했으며, 궁극적인 목표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감정과 같은 정신 기능은 뇌의 어디에 위치할까?
신경계의 핵심 세포 유형인 뉴런(neuron)은 다양해서, 그 모양과 크기에 따라 여러 세포층으로 규정 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이런 특성 및 분포와 밀도의 공간차를 이용해 잠재적인 구역 간의 경계를 정의했다. 같은 방식으로 브로드만은 대뇌 피질을 각 반구당 약 50개의 부위(region, 영역(area)이라고도 함)로 나눴다. 반면, 포크트 부부는 영역은 200개 이상 있을 수 있으며, 저마다의 고유한 세포 구조적(cytoarchitectonic) 패턴(즉, 세포 연관 조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물학에서는 공리라고 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것은 기능이란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브로드만의 뇌지도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오래 남았는데, 그 이유는 신경해부학자들이 피질을 너무 적극적으로 세분화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의 학생들과 연구자들 또한 여전히 브로드만의 지도를 인용하여 피질 부분을 지칭하고 있다. 당시 피질 영역의 기능에 대해 알려진 바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브로드만은 자신의 구분이 ‘마음의 내장기관’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그는 각 피질 영역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확신했다. 실상, 그가 포크트 연구실에 합류했을 때, 포크트 부부는 그에게 서로 다른 세포 구조적으로 정의된 영역이 특정한 생리적 반응과 기능을 담당한다는 주요 이론에 비추어 피질의 조직을 이해해보도록 하기도 했다.
포크트 부부와 브로드만이 따르고 있는 핵심 논리가 있다. 이는 사실상, 생물학에서 공리(公理)에 가까운 개념으로, 기능은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이 사례에서도, 구조적으로 서로 다른 피질 부분(다른 세포 유형, 세포 배열, 세포 밀도 등을 포함한)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근본적인 미세 해부학의 상세한 특징 설명을 통해 기능이 어떻게 개별화되어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감각, 운동, 인지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피질의 ‘기능적 단위(functional unit)’를 찾고 있던 것이었다.
신체의 다른 장기들의 경우에 그 경계가 보다 뚜렷한 것과 달리, 피질의 잠재적 하위 구분은 거시적인 수준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20세기 전반의 많은 신경해부학자의 중심 목표 중 하나는 이러한 ‘정신의 내장기관’을 조사하는 것이었다(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는 목표이기도 하다). 이 연구 프로그램의 당연한 귀결은 개별 뇌 영역이 특수한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뇌 뒤쪽의 브로드만 영역 17의 경우 시각 감각 자극을 처리하는 것과 연관된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영역/부위란 신경계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딱 알맞는 메커니즘적 단위이기에 개별 부분의 작동을 이해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신경과학자들이 뇌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각 영역이 특정 기능을 수행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됐다. 예를 들어, 일차 시각 피질(primary visual cortex)의 기능은 시각적 인식 혹은, 이미지의 ‘가장자리'(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빠른 전환)를 감지하는 것과 같이 보다 기초적인 시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뇌의 다른 감각 및 운동 영역에도 이와 동일한 유형의 설명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이나 운동 기능적이지 않은 뇌 영역들에 관해서라면 이 설명법은 상당히 난해해진다. 그 영역들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고 묘사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상으로는 이 아이디어가 뇌의 모든 부분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이 노력의 결과물은 영역-기능 쌍의 목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L = {(A1, F1), (A2, F2), … , (An, Fn)}과 같이, 영역 A는 기능 F를 구현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결과물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오늘날까지 그러한 목록은 체계적으로 작성된 적은 없다. 실상, 현재의 지식에 따르면 이 전략으로는 단순한 영역-기능 목록이 만들어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A1, F1) 쌍으로 시작될 수 있는 이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게 되면 점차 개정되며 여러 기능들의 목록을 포함하며 불어나 영역 A1가 일련의 기능들 F1, F2, …, Fk에 모두 관여하게 된다. 기본적인 일대일(A1 → F1)매핑에서 결과적으로는 일대다(A1 → {F1, F2, … , Fk}) 매핑으로 발전하게되는 것이다.
구조와 기능의 대응이 일대일이 아니라면, 뇌는 어떤 시스템인가? 이것이 바로 ‘얽힌 뇌’ 개념이 해결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해부학적 정보와 기능적 정보라는 두 가지 유형의 정보를 고려해 보는 것이 유용하다. 뇌의 거대한 해부학적 결합 연결성부터 시작해보자. 뉴런은 끊임없이 서로 전기화학적 신호를 교환한다. 그들의 신호전달은 중추신경계 안에서 세포체 너머 1mm 미만에서 15mm정도 사이로 돌출되어 있는 축삭돌기(軸索突起, axon)라고 불리는 물리적 세포 확장에 의해 촉진된다. 그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축삭돌기는 일반적으로 백질(白質, white matter)로 불리는 곳을 따라 묶여서 신경 세포체로 구성된 조직인 회백질(灰白質, grey matter)과 구별된다. 그렇다면 해부학적 연결성은 뇌의 세포간 신호전달을 지원하는 도로와 고속도로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연결이 국소적이지만 뇌는 중거리 및 장거리 경로의 인상적인 네트워크 또한 관리한다. 이와 연관된 대략적 차원을 파악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국소 뇌 회로(예를 들면 단일 브로드만 영역 내 회로) 내의 축삭돌기 길이는 1mm 미만에서 1cm 미만까지이다. 인접 영역과 근처 영역 간의 연결은 0.5~4cm까지로 말할 수 있으며,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과 후두엽(後頭葉, occipital lobe) 사이와 같이 서로 다른 엽의 영역 간 연결은 15cm 이상에 이를 수 있다.
포유류 종마다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마카크 원숭이(인간과 유사한 뇌 조직을 가진 종)의 뇌와 같은 경우, 매우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피질의 두 영역을 살펴보았을 때, 약 60%의 경우에 두 영역 사이 직접적인 연결이 있음을 발견했다(다만, 영역 간에 거리가 멀어질수록 경로의 강도는 감소한다). 특히, 피질은 주요 교통 허브처럼 작용하는 특수 부위를 통해 중거리 및 장거리 통신을 조직하고, 전체 피질에 걸쳐 신호를 조정하고 최적경로를 안배한다. 이는 주요 공항이 글로벌 항공 교통 네트워크의 중앙 연결 지점 역할을 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일부일 뿐이다. 피질에서 발견되는 광범위한 상호 연결 너머에는 여러 부위를 더욱 깊게 엮어주는 여러 ‘연결형 시스템’이 있다. 대뇌 피질 전체가 더 깊은 뇌 구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뇌가 구별된 구역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다소 단순화해서, 뇌에는 대뇌 피질, 그 바로 아래에 위치한 피질하 구조들(subcortical parts), 그리고 뇌줄기(뇌간(腦幹), brainstem)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피질과 피질하부는 1980년대에, 피질에서 피질하부로, 그리고 다시 피질로 연결되는 광범위한 접속 고리의 일부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구역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에는 피질로 신호를 전달하는 비교적 수동적 중간 단계로 여겨졌던 시상(視床, thalamus)과 같은 피질하 구조가 실은 피질 전체와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피질-시상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려졌다. 기본적 기능을 주로 제어한다고 여겨지는 시상하부(視床下部, hypothalamus)와 같은 피질하 영역조차도, 배고픔과 체온 등을 주로 조절하면서도, 뇌 전체에 걸친 광범위한 연결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들을 종합하면 신호가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다른 부분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믿기어려울만치 뒤얽힌 연결망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조합적(combinatorial)’ 연결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뇌의 연결 조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밀집된 경로의 연계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제어하는 방식에 있어 놀라운 유연성을 제공한다. 모든 유형의 신호는 다양한 방법으로 교환되고 통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든 잠재적 혼합은 우리가 마음과 뇌를 ‘지각’, ‘인지’, ‘감정’, ‘행동’과 같은 단순한 라벨들을 붙여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 하겠지만, 뇌에 대한 표준적인 관점은 뇌 조직의 두 번째 원칙, 즉 고도로 분산된 기능 조정에 의해 더욱 위축되고 있다.
‘뉴런들이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발화한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로마 제국의 길들 – 제국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것은, 지구를 두 바퀴 돌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한 것이었다. 그 도로망은 군사적 활용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무역과 문화, 행정 통합을 뒷받침했다. 제국의 각기 다른 지역 간의 경제적, 문화적 관계와 협력은 쿠르수스 푸블리쿠스(Cursus Publicus, 로마제국의 국영 수송 체계)라고 알려진 놀라운 물리적 인프라를 통해 유지되었다. 뇌 연구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해부학적 영역(예를 들어 로마제국의 도로들)을 넘어서 기능적 속성(로마 제국 내 여러 지역 간의 경제적, 문화적 관계)에 대해 더 많이 탐구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신경과학자들 자신들이 해부학적 특징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뇌에서 신경 신호 간의 기능적 관계는 여러 공간적 범위에 걸쳐 감지된다. 뇌 영역 내 신경 세포의 국소적인 범위에서부터, 수 센티미터 떨어져 있는 전두엽과 두정엽(頭頂葉, parietal lobe)과 같이 서로 다른 엽의 회백질에서 비롯된 신호를 수반하는 큰 범위까지 감지될 수 있다. 신호란 뉴런의 전기적 활동을 의미하는데, 회백질(즉, 신경 조직)에 삽입되어있는 미세전극을 통해 직접 기록되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하여 인간에게서 간접적으로 측정하거나, 다른 측정 기술을 통해 측정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기능적 관계가 감지될까?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부위에서 오는 신호가 동기화된 신경 활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발화(fire)하는 뉴런들이 기능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잠재적으로는 공통된 처리과정의 일부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특기할 만하다. 다양한 유형의 신호 조정은 특히 주의와 기억과 같은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뇌의 어느 한 영역의 반응 강도가 다른 위치에서의 신호의 시간적 진화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와 같이 추가적 관계 방식 또한 수학적으로 감지된다. 뇌에서 우리는 영역 간 공동 기능을 나타내는 지표인 신호 관계를 식별하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서로 분리되어 있는 지역 간 문화적 교류를 공유되었던 유물이나 언어적 패턴의 증거를 통해 감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소적 부분 내의(단 몇 밀리미터를 사이에 둔) 두 장소에서 신호를 측정할 때, 두 부위 간에 주목할 만한 기능적 관계가 발견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들의 신경 활동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 뉴런들이 비슷한 입력을 받고 국소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의 신경 신호 사이의 기능적 관계와, 결정적으로, 직접적인 해부학적 연결 – 직접적인 축삭돌기의 연결이 없는 뇌 부분 사이의 기능적 관계도 관찰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영역 간 신호 조정은 A 지점과 B 지점 간의 직접 연결 여부보다는 두 지점 간에 가능한 통신 경로의 총 개수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영역 A와 B는 해부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영역 C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보다도 우회적인 경로로 A와 B를 연결할 수도 있는데, 이는 직항편이 없고 여러 번 환승해야 하는 두 도시 간을 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방식으로 뇌는 얽혀있는 경로를 통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활용하는 기능적 파트너십을 형성한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따른 영역 간 서로 다른 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뇌의 뛰어난 유연성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뇌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들과, 신호가 어떤 식으로 중추신경계 전반에 걸쳐 행동적으로 연관된 관계들을 구축하는지를 고려하면 중요한 통찰에 다다르게 된다. 고도로 상호 연결된 시스템에서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 뇌 영역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뇌 영역 수준에서 ‘기능적 단위’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만큼 발견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찌르레기들의 군집비행에서 개개의 새들의 집단적 행동이 단일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여러 뇌 영역에 분산된 뉴런 앙상블(neuronal ensembles)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분산되어있는 뉴런 앙상블에 대한 사례는 많이 있다. 예를들어 전두엽 피질, 해마와 같은 대뇌 피질 영역과 편도체와 같은 피질하 영역 너머 확장되어있는 뉴런들은 무엇이 위협적이거나 안전한가를 배우는 데 중요한 회로를 형성한다. 이러한 다중 영역 회로는 어디에나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fMRI 연구에 따르면 뇌는, 대뇌 피질과 피질하 영역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소위 ‘현출성 네트워크(salience network,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짐)’는 전두엽과 두정엽 등의 뇌 영역에 걸쳐 있으며, 뉴런 앙상블로 볼 수 있다.
뇌 회로나 대규모 네트워크 경우를 앙상블로 보든 그러지 않든, 서로 연관된 뉴런의 그룹화는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역동적인 어떤 것으로 봐야만 할 것이다. 즉, 이것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현 상황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역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적 필요에 따라 역동적으로 조립되고 분해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함의하는 바는, 뇌 영역 A, B, C가 일반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처리하는 데 함께 활성화되는 반면, 어떤 맥락에서는 영역 D를 포함하는 앙상블 혹은 약간 다른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앙상블 {A, C, D}를 관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뉴런 앙상블은 매우 가단성 있는 ‘기능적 단위’를 구성한다.
복잡한 음악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해보자. 현악기 섹션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일부 바이올린들이 목관악기와 함께 한 악구를 연주하는 동안 다른 바이올린들은 첼로와 화음을 맞춘다. 이러한 그룹핑은 다음에 오는 다른 구절에서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뇌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고정된 영역이 하나의 일에 배정된다기 보다는, 우리가 실행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에 따라 조립되고 분해되는 유연한 집합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뇌의 광범위한 물리적 연결과 여러 영역에 걸쳐 조정되는 활동에 대해 습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특징은 앙상블을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뇌 영역들은 동시에 여러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역할을 바꿀 수 있다.’
과학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아이디어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9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도널드 헵(Donald Hebb)은 뇌가 일관된 사고를 생성하는 능력은 뉴런 활동의 시공간적 조율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포 집합체(cell assembly)라고 불리는 개별적이고 강력하게 상호 연결된 활동적인 뉴런들의 그룹이, 생각이나 감정과 같이 구별되는 정신적 실체를 나타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런 아이디어가 성숙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는 뇌 전체에서 동시에 신호를 측정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던데다, 실험적 신경과학이 컴퓨터 과학, 수학, 물리학 등 다른 학문 분야로부터 보다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각 악기의 연주와 그 악기들의 조화에서 교향곡이 탄생하듯이, 뇌 기능 역시 각 영역 자체와 그것들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에서 탄생한다. 각 악기의 소리를 따로 듣는다고 해서 교향곡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뇌 영역을 분리해 연구하면 복잡한 정신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깨닫고 있다.
특히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뇌의 조합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겹치고 변한다는 것이다. 한 바이올린이 어느 순간에는 현악 파트의 일부였다가 다음 순간에는 더 작은 앙상블에 합류하는 것처럼, 뇌 영역은 여러 네트워크에 동시에 참여하고 필요에 따라 역할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그러나, 뇌의 네트워크를 어떤 정해진 영역들의 셋팅들의 모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뇌의 네트워크들이란 변화하는 요구에 따라 형성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역동적인 연합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뇌가 제한된 수의 영역을 사용하여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한 복잡한 행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각, 인지, 행동, 감정, 동기와 같은 범주는 입문 교과서의 제목인 동시에,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가 마음과 뇌의 조직을 개념화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그들은 특정 유형의 정신 활동을 뒷받침하는 과정을 위한 환경설정이 있는 각 영역으로 뇌를 세분화 하려고 한다. 머리 뒤쪽과 시각 기능과의 관련성이나 뇌 앞쪽과 그것의 인지 기능에서의 역할과 같이 어떤 부분이 지각을 담당하는지 등등.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채택한 마음-뇌의 분해는 모듈러라고 불리는 조직을 따른다. 여기서 모듈성이란 뇌가 각각 특정한 정신 기능을 처리하는 전문화되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구성 요소 또는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념을 말한다. 이는 기계의 개개 부품이 함께 작동하지만 별도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이 모듈식 조직은 그러나, 이 글에서 논의하는 해부학적, 기능적 신경 구조의 원칙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뇌의 거대한 조합적 연결성과 고도로 분산된 기능적 조정은 깔끔하게 구분되기 어렵다. 뇌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양방향 경로는 전통적인 정신 영역(인지, 감정 등) 간의 잠재적 경계를 무력화하는 교차 연결 시스템을 생성한다.
‘불안, PTSD, 우울증 등은 시스템 수준의 실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뇌의 영역들은 맥락에 따르는 방식으로 여러 네트워크와 역동적으로 제휴해서 현재 요구 사항에 근거해 집합하고 해체하는 연합을 형성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복잡성이 의미하는 것은 기능이란 것은 개개 모듈들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영역의 집합들을 가로지르는 탈중앙화된 조정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속성은 개별 구성 요소로 축소될 수 없으므로 엄격한 모듈식 생각틀로는 뇌의 얽힌 본질을 포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 뇌는 그토록 얽혀 있고, 인간이 만든 시스템과는 다를까? 뇌는 생명체가 직면한 도전에 적응적으로 대응하고 생존과 번식을 촉진하도록 진화했지, 딱딱 분리된 인지적이거나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 어휘들조차도 – 동물 행동 연구와는 분리된 기원을 가진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정신적 어휘(주의, 인지적 통제, 두려움 등) – 문제있는 이론적 틀이다. 그보다는, 진화적 숙고에서 영감을 얻은 접근 방식이 뇌의 구조와 기능 간 관계를 정리하는 데 더 나은 틀을 제공한다.
얽힌 뇌가 함축하는 바는 건강한 뇌의 처리과정과 건강하지 못한 뇌의 처리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실질적이다. 과학자들이 심리적 고통의 단일하고 고유한 원인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예를 들면, 불안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과도한 편도체 활동의 결과이며, 우울증은 세로토닌 공급 부족으로 인해 유발되고, 약물 중독은 도파민 과잉 공급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이 묘사하는 생각에 의하면 우리는 심리적 상태에 대한 고유한 결정 요인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은 시스템 수준의 실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것들에는 여러 뇌 영역에 걸쳐, 여러 뇌 회로에 걸친 변화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건강한 상태나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감정적, 동기적 또는 인지적 문제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런 분류는 피상적이며, 해부학적이고 기능적인 뇌의 조직에서 비롯되는 뒤섞임을 놓치게 한다.
또한, 분산된 뉴런 앙상블 수준에서 단일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의 조건들은 너무 이질적이고 개인마다 차이가 커서 분산 수준을 포함한 어떤 단일한 변화에도 매핑될 수 없다. 기실, 뇌의 활동 과정은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일정한 유형의 교란이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역학의 다양성은 정신 건강의 경험이 어떻게 겉으로 보여지는가에 기여할 것이다.
그것이 건강해보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 우리는 복합적인 마음-뇌 처리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찾는 것을 멈춰야만 한다. 아마도 ‘얽힌 뇌’ 관점의 가장 일반적인 함의는 이것일 것이다 – 뇌의 기능이란 마치 찌르레기들의 군집비행처럼 그 개개 구성 요소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원문소스: https://aeon.co/essays/how-the-human-brain-is-like-a-murmuration-of-starlings
translated from Eng text, September 2024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의 언어 (The Language of Electroacoustic Music, 1986)
서문 – 사이먼 에머슨 (Intro by Simon Emmerson)
서양 음악 장르 중에서 창작자의 머리에서 완전히 튀어나온 장르는 거의 없다. 이전에는 통상 각 사례의 선행된 실천과 영향을 식별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변혁을 맥락화하려는 욕구, 그럼으로써 우리의 전통의 연속성을 재확인하고자하는 욕구를 반영했다. 그러나 이전 어느 시대에도 이런 분석과 비판의 과정이 이만큼 직접적으로 진행된 적은 없었다. 새로운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즉각적으로 대중 언론에서부터 난해한 연구 논문에 이르는 다양한 출판물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즉각적인 학문화는 위험하다. 특히 학문화가 예술의 형식에 적용될 때는 더욱 그렇다; 모든 정보는 중립적이라는 외양을 띠고, 모든 사건은 동등하게 분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누가 처음이었는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역사적 참고 자료의 망이 형성된다. 형식이나 기법의 세부 사항은 살펴볼 수 있겠지만, 음악에 대한 실제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진정한 비판의 출현은 억눌린다. 20세기 서양 음악에서 유일하고 진정하게 독창적으로 발전한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electroacoustic music)에 관해서 지금까지는 대개 이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이러한 글들은 음악 기법에 대한 분석과 기술적 수단에 대한 분석이라는 두 가지 영역을 다뤘다. 음악적 목표, 음악의 윤리와 미학에 관해 쓰인 글은 – 적어도 영어로는 –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현재 통용되는 1950년대의 역사를 여기에 인용해보자.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과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k) 사이의 대논쟁이 단지 재료에 대한 것이었다는 단순한 관점은 동기에 대한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이런 관점은 단순히 학계에서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고 작곡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단순히 음악이나 기술에 대한 최신 사실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느린 과정에 기여하고자 한다. 2천 년 세월의 만남의 장소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더 명확한 그림과 장기적인 관점을 확립하기 위한 토론을 시작해보려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접근 방식과 주장을 담고 있지만, 여러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 가지를 짚고 가겠다. 그 중 첫 번째는 실험적 전통에 대한 헌신이다. 즉,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 시험하고, 연구하며 그 과정에 따라 이전 추정을 수정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소리의 해방이 엄밀히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때인 1960년대를 1980년대와 구분짓는다. 저 20년의 차이에 대한 단서는 실패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에 있다. 실패는 그것이 알아차려지고, 누군가의 발화와 언어를 수정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게 될 때 발견에 기여한다. 두 번째 공통적 접근방식은 – 그리고 모든 필자들은 작곡가이다- 소통에 대한 헌신에 있고, 또한 음악의 과정에서 청취자의 지각이라는 지당한 역할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사전(事前) 작곡(pre-composition)’과 ‘청각 작곡(aural composition)’ 사이에 넓은 범위의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청취자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겠으나, 논의의 기반이 될 수 있을 합의된 어휘를 확립하기 위한 논쟁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이런 견해가 단지 청중에게 아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져선 안된다. 만약 그랬다면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은 이미 오래 전에 대중 전자음악 형태에 완전히 흡수되었을 것이다.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은 두 가지 근본적인 방식으로 청취자에게 도전한다. 테이프 음악(tape music)의 경우, 라디오가 촉발하고 대중 음악의 뮤직비디오가 역설적으로 보강하고 있는 실황 공연이라는 시각적 자극을 대체할 상상력을 요구한다. 또한 다른 시각적 단서인 악보에 의지하는 것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을 위한 악보도 존재하는데 이것은 보다 다양한 기능이 있다. 악기 연주, 매우 복잡한 라우드스피커 시스템, 혹은 단순한 읽기, 배경 정보를 위한 용도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작품 자체를 재창조하는 용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악보는 규정에서 묘사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요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음악적 발화를 표현하기 위해 혹은 적어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기록된 상형문자에 의존하는 것에서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고전적인 글 ‘기술과 작곡가(Technology and the Composer)’로 시작하는데, 이 글은 1977년에 쓰여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함의하는 바가 있다. 내용적으로 이 글은, 다른 기고자들이 기술한 많은 발전에 관해 선구적으로 포괄함으로서 이 책의 서문을 이룬다. 불레즈가 이 글을 썼을 당시는 컴퓨터가 음악 합성에 사용된 지 불과 10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는 ‘보수적 역사주의’의 하나가 되고자하는 널리 퍼져있던 음악적 태도를 느꼈고, 기술 발전을 통합한 보다 진보적인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작곡가와 기술자 간의 이해와 소통, 그리고 “음악적 발명의 필수성과 기술에 대한 우선시를 고려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촉구했다. 그는 기술적 자원과 음악적 개념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고, 재료와 아이디어 사이에 진정한 변증법적 관계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그러한 상호적인 관계가 약간의 의구심과 함께 느리게나마 발달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논의가 이 책에 기여하는 바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불레즈가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근본적인 질문, 즉 “재료가 아이디어에 맞아떨어지는가, 그리고 아이디어가 재료와 어울릴 수 있는가”는 지금 이제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기고들은 세 가지 광범위한 제목 아래 묶인다. 첫 번째, ‘재료와 언어’에서 나는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이 처음 시작된 이래 작곡가들이 사용한 음악적 재료를 논의하고 분류하기 위한 맥락을 제시한다. 트레버 위샤트(Trevor Wishart)는 아이디어의 직접적인 전달 및 고유하고 개인적인 발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용 언어의 개발을 이끌어낼 소리의(sonic) 세계 내의 공통적으로 이해되는 상징을 확립하고자 한다.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는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에 대한 ‘분광 형태학적(spectro-morphological)’ 접근법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소리 대상들(sound-objects)이 가진 방식, 그 지각적 특성에 내재한, 몸짓과 형태, 그리고 형식을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 – 즉, 한 언어를 통째로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 – 에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그의 챕터는 이러한 형태가 어떻게 형성되고 개발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조사한 최초의 영문이다.
두 번째 섹션인 ‘언어의 문제’에서는 기술 자원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미학적, 실용적 문제를 다룬다. 데이비드 킨(David Keane)은 이런 발전과 관련한 ‘언어’와 ‘음악’이라는 용어의 사용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도구가 작업의 본질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 맺는다. 브루스 페니쿡(Bruce Pennycook)은 많은 경우 교육 기관 스스로 시작한 기술 개발과 사용이 지속될 수 있게 교육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대학 내 연구의 잠재력과 컴퓨터 음악 시스템 개발이 상업적인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 사이의 분열을 알아본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것은 결국 전자 음악 작곡가와 학생들이 서로 상충될 표현적 음악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고 있다.
앞서와는 대조적으로 이 책의 마지막 네 장은 자금이 충분한 특정 구획에서는 현재, 고도로 정교한 창의적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불레즈의 용어에 따르면, 음악적 발명은 기술 언어를 차용하여 그 자체만의 음악 언어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기술의 영향’에서 제목은 마지막 섹션에 다소 포괄적으로 쓰였는데, 여기서 네 명의 저자는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주제에 접근한다. 마이클 맥냅(Michael McNabb)은 음악 분야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개요를 설명한 후, 그가 음악적 재료를 형성하고 통합하기 위해 개발 중인 기술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배리 트루악스(Barry Truax)는 모든 음악적 매개변수를 제어하는 데 지나치게 세부적인 접근 방식을 적용하면 몸짓과 표현 면의 제어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용자가 비교적 적은 수의 변수만 조작하고도 결과적으로는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컴퓨터 음악 언어를 제안한다. 반면 조나단 하비(Jonathan Harvey)는 매개변수별 상세한 연구조사를 옹호하고 그의 음색 연구와 그것이 작곡에 주는 자극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설명한다. 토드 마초버(Tod Machover)는 예술 창작의 근본적인 통합 원칙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컴퓨터 기술이 그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자신의 음악을, 특히 곧 발표될 오페라 Valis를 반영해가며 이야기 한다.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의 언어’는 오늘날의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의 많고 다양한 표명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책은 핵심 문제를 명확히 함으로써 미학적 문제에 대한 논의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책이 50년째를 맞이하는 그 매체에 대한 진정한 비평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이먼 에머슨, 런던, 1986년 2월
